장르적 특성의 획일화에 대한 단상: 패러다임

 사람들이 장르적 특성이 반복되고 작품들이 획일화 된다는 비판을 하는것을 많이 보아왔다. 이것은 어떤 장르던 계속 반복되온 것 같다. 틸 앤 오렌지로 범벅된 영화계, 화려한 트랜지션과 속도조절밖에 없는 프랙무비, 같은 형식이 반복되는 힙합, 똑같은 발라드, 높은음과 가성 하이라이트만 반복되는 노래들, 획일화된 입시미술 그림체. 뭐 그런 것들.

이런 획일화에 대한 비판은 일견 타당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 비판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논리 - 같은 요소들의 반복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식상함과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왜 똑같아질까 라는 고민까지 도달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계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 라는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패러다임은 과학계에서 사고의 공유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설명이지만, 각종 문화적 분야, 창작에서도 충분히 타당한 설명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패러다임이라는 말 자체는 많은 사람들이 익숙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사전적으로 설명되기 대단히 어려우면서도(심지어 토머스 쿤 본인조차도 그것을 어려워하였다고 기술함) 누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과학에서의 용례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문화/창작 분야에서 패러다임이라고 한다면, 그 분야가 가진 요소들이 어느 정도 일반화에 도달하였을 때 공통적으로 가지는 패턴들, 혹은 특징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를 예로 들자. 최근 많은 영화들은 틸 앤 오렌지를 사용하며 셰이키 캠을 통하여 역동적인 화면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하였고, 그것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일정 영역에서 영화계의 패러다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 영화는, 특히 우리가 소위 예술 영화라고 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그것이 시장에서 입증 되었을 때, 그 요소들은 패러다임이 되어서 획일화 과정을 시작한다. 나는 영화 평론가 수준의 바탕 지식이 없고 일반인 수준의 영화 감상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예시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두 영화 남한산성과 트랜스포머를 예시로 들어보자. 나는 어느정도는 드라이한 테이스트를 가지고 있어 영화 남한산성을 정말 좋아하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간에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흥행은 커녕 손익 분기점조차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또한 들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특급 에스프레소 같은 존재이다. 영화가 가진 향과 진미는 뛰어나나, 대중이 좋아하는 요소들이 (즉, 설탕이나 우유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로맨스도, 화려함도, 유머도 사건 해결에 의한 카타르시스도, 아무것도 없다. 그런 오락적 요소가 진짜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조선군의 전투장면 일부가 그런 요소에 간신히 들어가는 수준이고, 요즘 말로 하면 고구마만 반복되는 영화이다.  상업적 영화로서 성공하지 못할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으나 영화가 가진 모든 요소들의 퀄리티는 최상급이었다. 오죽하면 역덕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소리를 들었을까.

반대로 트랜스포머는 대중성의 대집합이다. 틸 앤 오렌지가 깔린 화려한 CG와 로봇 디자인, 정신없는 셰이키 캠과 매력적인 배우들, 펑 펑 터져나가는 모든 것들. 그야말로 오락적 요소들의 대향연이며 작품성이라고는 안드로메다로 보내준 그런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았다. (남자들이 장난감 좋아하는거 뭐 그렇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직감적이고 본능적인 요소들을 자극하는 이 영화는 길이 길이 흥행했다. 3,4,5 거쳐가면서 스토리가 잠이 오는 수준까지 도달했고 공룡 탄 로봇을 가지고도 실패했다는 말이 나왔지만, 어쨌거나 마이클 베이는 그 전까지 애들 장난감, 마니아들의 전유물에 불과했던 트랜스포머 IP를 가지고서 돈을 긁어 모았다. 

그렇다면 감히 트랜스포머가 남한산성, 혹은 그런 작품성 위주의 영화들 보다 가치가 없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에스프레소가 진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사람들 대부분은 아메리카노나 라떼를 찾는다. 그렇다고 남한산성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르가 획일화에 도달하는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남한산성을 정말 감명깊게 본 쪽이다. 단지 트랜스포머 쪽이 메이저한 패러다임(혹은 시장의 메인스트림)에 더 가깝다는 현상의 설명이 필요했을 뿐이지. 


다시 패러다임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어떠한 충격이 필요하다. 기존의 가치를 뒤흔들만한 충격이.  


존 윅의 롱테이크 


존 윅은 그런 충격의 좋은 예시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존 윅 액션의 특징은 셰이키 캠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롱테이크의 사용인데, 킹스맨의 교회 난투 장면도 롱테이크이지만 역설적으로 셰이키 캠의 특성을 가진 하이브리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어서 여기서는 존 윅의 장면을 예시로 든다.

아마 본 시리즈부터 아닐까, 어느 시점부터 영화계에서는 셰이키 캠만으로 가득하다는 비판이 꽤 있었다고 한다. 타당한 비판이다. 그러나 그 현상이 왜 벌어졌는지에 대한 원인은 좀 생각할 여지가 있다. 셰이키 캠 기법을 쓰지 않고, 셰이키 캠을 쓰는 영화들과 시각적인 경쟁을 벌여서 이기려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얄팍한 재주로 감히 테이큰과 본 시리즈의 셰이키 캠 액션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제시하는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오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오는것은 대단히 어렵고 또한 위험한 일이다. 왜 위험한 일이냐면, 그게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거든. 그래서 존윅이 대단한 것이다. 존윅의 오락적 요소는 기존 영화들과 차별화된 답을 준다. 말하자면 비교적 정적인 다이나믹함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하드보일드의 다른 진화 루트라고 해야할까.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나려는 어설픈 시도는 위와 같은 대 참사를 낳을 수 있다. 암만 봐도 라스트 제다이는 300 같은 걸 만들고 싶었던거 같긴 한데... 잭스나이더가 난놈은 난놈이다



나같은 저예산/무예산 인디 제작자들에게는 이런 시장의 성공이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몇번 실패해도 잃는건 편집에 들인 시간이 날아가는 정도지 내가 무일푼이 되고 시장에서 패배자로 낙인찍히거나 그러지 않으니까. 그러나 할리우드 감독이라면, 아마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어느 분야나 그만큼 메인스트림을 벗어나 패러다임의 전환까지 도달하는것이 어렵다. 단순히 한두번 아이디어성으로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시도가 아니라, 그 패러다임 자체를 벗어나는건 정말 대단한 것이다.

만류귀종이라는 말은 무협지에서나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그렇게 많이 쓰이는데에는 그 말이 많은 것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만류귀종의 경우는 모든 것이 완벽한 경지에 도달함을 이르는 말이지만, 사람들이 좋은것을 찾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반복하여서 어떤 체계가 완성되는 현상을 설명해주기 위해서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단어이다. 완벽하지는 못하여도(사실 세상에 완벽한게 무엇이 있겠는가 싶지만) 최소한 현재 단계에서 사람들이 많이 쓰고, 소비하는 것들은 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예전에 나는 가수다나 복면가왕이 한창 유행이었을대 혹자들은 고음대결이 아니냐고 비판을 했던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고 보여진다. 글세, 고음 안지르고 음악 경쟁에서 이길 수 있나? 라면에 MSG 안넣고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비판은 쉬운법이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장르적 특성, 공통점이 생기는것도 이와 비슷하다.

요 근래에 주변 프랙 무비 제작자들의 설왕설래가 있었다. 사실 나는 고전 FPS(COD/CS 같은것들..) 에는 문외한이고 서든이나 배틀필드를 하던 세대라서 그쪽 사정에 밝지는 않다만, 항상 화려한 트랜지션, 과장된 화면, 빠른 속도와 슬로모션의 반복, 뭐 이런게 똑같이 반복된다는 이야기인거 같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내가 보아온 장르적 특성의 반복에 대한 비판과 완전히 동일하다. 비판하는것도 좋지만, 그 해답을 내놓는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도 사람들이 이해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두서없는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창작자들도 그런 틀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똑같은 것만 찍어내는 일을 반복한다는 비판이 그대로 들어맞을 뿐이니까.

..... 정작 나는 그런 프랙무비 요소들을 전혀 못쓰지만!
기술적 문제인가 테이스트의 문제인가 나는 그런 셰이키한 화면을 만드는데 영 쥐약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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